관광 가이드 전문 학원 제공 면접대비 청계천의 역사적 배경
1. 조선시대
청계천은 북쪽으로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동쪽의 낙산(낙타산)과 남쪽의 남산(목멱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서울의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던 개천이었다.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태종이 그 후 천도를 하면서 서울의 600년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청계천은 서울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조선초기부터 홍수만 나면 범라매 온통 물난리를 겪었고, 평상시에는 건천을 오염이 심했던 탓에 당시에도 천계천을 메워버리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종은 하천을 메우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라 해서 받아 들이지 않았으며,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태종11년(1411) 당시로서는 대규모 석교인 광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세종 때에는 수시로 준설을 하고 수표교를 만었었으며, 물 가운데 수표를 세워 물의 깊이를 측정하여 홍수에 대비하였다.
영조 36년(1760)에는 20만명을 동원하여 개천의 폭을 넓히고, 양변에 석축을 쌓고 수로를 직선으로 펴 현재 청계천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청계천은 백운동천가 중학천 등 모두14개의 지천에서 흘러나온 물이 합류하여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약 86개의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광교와 수표교 등 일부만 남아있다.
청계천은 서울 도성의 하수도였으며,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또한 때가 되면 청계천의 다리를 중심으로 답교놀이, 석전, 연등행사 등이 벌어졌고, 조선 말기에는 청계천 주변에 빈민들이 움막을 짓고 사는 등 서민 생활의 애환이 깃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도시문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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