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3일 월요일

번역사 자격증 준비를 위한 성씨의 유래와 득성과정

1. 성씨(姓氏)의 유래(由來)



성씨의 발생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古朝鮮)시대에 왕족(王族)에서
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 온다.



고대 씨족사회로 접어들면서 그 집단을 통솔하는 지배자가 나타나는데, 통솔에 필요한 정치적 기능을 부여함에 있어서 다른 씨족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呼稱)이 성(姓)으로 나타나고, 점차적으로 지방세력이
중앙 귀족화 되면서 다수의 부족을 통솔하기 위한 칭호이며, 정치적 신분을 표시하는 중요한 의미로 나타났다.



따 라서 성(姓)은 초기에 왕실(王室)이나 귀족(貴族)에서만 국한되어 사용하다가, 국가에 공이 큰 공신(功臣)들이나 귀화인(歸化人)들에게 세거지역(世居地域)이나 강·산의 명칭을 다라 사성(賜姓)을 하면서 확대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의 성씨사용은 과거제도(科擧制度)가 발달되는 고려 문종(文宗 1047) 이후에서부터 보편화되었으며, 상민(常民)과 노비(奴婢)를 포함한 모두가 성(姓)을 갖게 된 것은 조선말 개혁정치가
시행되면서부터 이다.






2. 성씨(姓氏)의 득성과정(得姓過程)




삼국사기 제 13 권 고려 본기1에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은 고구려를 건국하고, 고(高)씨를 자기 성으로 하였으며,

건국공신(建國功臣)인 재사(再思)에게는 극(克)씨를,

무골(武骨)에게는 중실(仲室)씨를,

묵거(默居)에게는 산실(山室)씨를 사성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23권 백제 본기 1에는 백제의 시조(始祖) 온조(溫祖)가 부여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부여(扶餘)씨로 하였으며,

신 라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기원전 57년경 양산(楊山) 기슭 나정(蘿井)옆에 있는 숲속에서 표주박 같은 커다란 알에서 탄생했다 하여 표주박 박(朴)씨를 성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고,김씨의 시조의 김알지(金閼智)는 65년 탈해왕 9년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숲 속에서 금함(金函)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김(金)씨라 하였으며,가야국 시조인 수로(首露)도 42년(신라 유리왕 19년) 금관국(金官國) 북쪽 귀지(龜旨)봉에 떨어진 6개의 황금알에서 나왔다 하여 김(金)씨라 하였다.



삼국사기 제 1권 신라 본기에는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6부를 개정하여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양부)장 알평(謁平)에게는 이(李)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장
소벌도리(蘇伐都利)에게는 최(崔)


무산 대수촌(茂山大樹村: 점량부)장
구례마(俱禮馬)에게는
손(孫)


취산 진지촌(嘴山 珍支村: 본피부)장
지백호(智伯虎)에게는
정(鄭)


금산 가리촌(金山 加利村: 한기부)장
기타에게는 배(裵)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 습비부)장
호진(虎珍)에게는
설(薛)씨를 사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사의 백제열전에 보면 사(沙)·연(燕)·예·해(解)·직(直)·국(國)·묘(苗)씨 등 8대성이 기록되어 있으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두 아들이 어머니 아유타국(阿踰他國)공주 허황옥(許黃玉)의 성씨를 따서
허(許)씨라 하였고,

고려 왕건은 고려 건국 개국공신인 홍술(弘述)에게 홍(洪)씨를,

삼능(三能)에게 신(申)씨를

복사귀(卜沙貴)에게는 복(卜)씨를 사성하고

백옥삼(白玉衫)에 사관하여 각각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兼)으로 개명하였다.



또한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하여 성을 얻었는데, 주로 중국계통이 많았다.

중국계통이 아닌 외국계 성씨를 보면


괴산점씨(槐山占氏)와 김해김씨(金海金氏) 우록(友鹿)계는 일본계통이고,


화산이씨(花山李氏)
는 안남(安南)계통,


연안인씨(延安印氏)
는 몽고(蒙古)계,


덕수장씨(德水張氏)
는 아랍계이며,


태씨(太氏)
의 일부는 발해(渤海)계통이고,


임천이씨(林川李氏)
와 경주설씨는 위글계통이다.



흥미있는 사실은 충주어씨(忠州魚氏)시조 어중익(魚重翼)은 원래 지씨(池氏)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체모(體貌)가 기이하고 겨드랑 밑에 비늘 셋이 있어 고려 태조가 친히 불러, 보고나서 어씨(魚氏)로 사성했다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의 목천현 성씨조(木川縣姓氏條)에 보면,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후 목천 사람들이 주주 반란을 일으키자 태조의 미움을 사서, 각기
우(牛 : 소)·마(馬 : 말)·상(象 : 코끼리)·장(獐 : 노루)·돈(豚 : 돼지)씨 등의 짐승이름으로 사성했는데, 후에
우(于)·상(尙)·돈(頓)·장(張)씨 등으로 변성(變姓)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