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0일 목요일

관광여행 안내사 전문학원 제공 가이드 면접 - 청계천

관광여행 안내사 전문학원 제공 가이드 면접 - 청계천

청계천은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600여년 전부터 시민들을 품고 흘렀다.

조선시대의 청계천 다리는 모전교,광통교,장통교,수표교,하랑교,효경교(새경다리),

태평교(마천교.오교),오간수교,영도교 등 9개가 있었다.

대부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됐다.

이에 따라 청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역사와 숨결을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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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교*



영도교는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도 영월로 귀양갈 때 아내 송비(宋妃)와

이별했던 장소다. '영영 건넌다리' 등으로 불린 까닭이다.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한

김별아씨의 장편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이후 사연을 안타깝게 여긴 성종이 즉위한 뒤 나무다리였던 이다리를 돌다리로

개축하고 직접 영도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다리를 헐어 모자란 석재로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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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교*

수표교는 과거 청계천 오염의 주범으로 손꼽혔다.

조선태종 때 다리 주변에 소.말을 거래하는 우마전을 설치하고 배설물을 개천으로

흘려보냈다. 이 배설물은 땔감으로 쓰던 나뭇재와 함께 청계천의 물 흐름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수표교는 숙종이 사랑을 꽃피운 장소이기도 하다.

숙종이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우연히 문 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아리따운 처자를 보게 된다.

며칠 끙끙 앓던 숙종은 결국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 주인공은 지금까지도 조선시대

'악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장희빈이다.



청계천다리의 유래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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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



광통교는 한이 서린 다리다. 신덕왕후가 낳은 형제들 때문에 왕좌에 오르지 못할 뻔했던



태종은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이 죽은 뒤에도 증오를 풀지 못했다.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광통교를 흙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하면서 신덕



왕후의 능을 지키던 신장석(神將石)을 뽑아다 교각으로 썼다.



뭇사람들의 발에 밟히며 고통을 받으라는 뜻이었다.



지난해 청계천 복원공사로 광통교를 발굴했을 때 신덕왕후의 외가인 강씨묘 종친회에서는



광통교에 깔린 신장석을 정릉으로 돌려 달라고 서울시에 탄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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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간수교*



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성벽에 만든 다섯 개의 아치형 구멍인



오간수문에서 유래됐다.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오간수문 위에 놓여진 다리다.



오간수문은 도성을 빠져 달아나는 죄인이나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됐다.



명종 때에는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왔다가 도망갈 때도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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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전교*



청계천의 첫다리다.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이 있어서 붙어졌다.



1412년 태종 12년에 세워졌다. 지금의 무교동은 모전교 부근에 있던 모교동과 구별하기



위하여 모교와 발음이 비슷한 무교동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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