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일본현지통역가이드시험 대비 일본역사 - 야요이시대

일본현지통역가이드시험 대비 일본역사 - 야요이시대


기원전 400년경부터 3세기경까지는 야요이 시대라고 한다. 시대구분 명칭은, 이 시기에 특징적으로 발굴되는

야요이식 토기 에서 유래하였다. 덧붙여 야요이식 토기라는 명칭은 토기가 발견된 지역명칭이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사회가 정착되어, 규슈 북부에서 일본열도 각지로 급속히 퍼졌다. 농경사회로의 이행으로 각 지역에서는 지역집단이 출현하였고, 농경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지역집단의 규모가 점차 커져갔다. 그 중심부에 환호집락을 조성하였다. 그 당시 건조된 많은 수의 분구묘는 대형지역집단의 수장묘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집단내에서 신분의 차이가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 일본열도를 왜, 왜국이라고 불렀다. 대형지역집단 중에는 중국과 교류를 하였던 지역집단도 있었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나라로 인식했다. 기원전후를 기준으로 100년을 전후하여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후한서》에 후한의 광무제가 노국왕에게 인수(印綬)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인(金印)이 발견되었다.[1] 대형지역집단은 점차 정치적으로 통합하였고, 왜국연합이라고 불리는 정치연합체가 2세기 초에 형성되었다. 연합체의 맹주는 왜국왕이라고 했으며, 초기 왜국왕으로는 기록된 인물이 스이쇼이다. 잠시동안 왜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지만, 2세기 후반 소위 왜국대란이라 불리는 내란이 발생하였고, 그 후 사마대국의 히미코가 왜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히미코는 위나라와 교류하여 왜국연합의 안정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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