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3일 월요일

번역학습을 위한 우리말 공부(백의 의미)

‘ 백약이 무효, 백전 백승, 백수백복(百壽百福), 백발 백중, 백배 사죄…’

보 기를 낱낱이 들자면 끝이 없다.수자가 붙은 한자 말 가운데서는 단연 백이 압권이다. ‘범 백사(凡 百事)’란 말이 있다.'통틀어 백 가지 일’이란 뜻이니 한 가정의 주부가 집안의 크고 작은 일 두루두루, 고루고루 잘 보살피고 손질하고 다듬고 하면 ‘집안 일, 범 백사’에 소홀함이 없다고 한다.이 지경이면 백은 이미 단순한 수가 아니다.1에서 시작해서 가까스로 98을 지나고 99를 거쳐서 드디어 다다르게 되는 그 헴가림 또는 셈하기의 백, 그 이상의 의미를 백은 갖게 된다. 수로서 낱낱이 셈하는 백 그보다 더한 엄청난 의미를 백은 갖고 있다. 그건 수 이상의 것이고 셈 이상의 것이다.이 상황에서 백은 상징이 된다. 기독교의 십자가며 불교의 만(卍)이 갖는 상징성과 거의 같은 차원의 것을 백은 누리고 있는 것이다. 1이 이미 그렇고 3이 또한 그렇지만 상징성의 깊이며 높이에서 이들은 백을 당하기 힘겹다.



완전·충족·극을 다한 수 100


만리비추 상작객(萬里悲秋 常作客 - 만리 슬픈 가을에 언제나 나그네 노릇이라네)

백년다병 독등대(百年多病 獨登臺 - 백년 많은 병에 홀로 다락에 오르노라)



우 리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당 나라의 시성(詩聖), 두보의 「등고(登高)」라는 시의 일부다. 두보의 많은 시가 그렇듯이 삶의 비창함이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미고 드는 이 대목에서 두보는 자신의 한 평생을 ‘백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나이 쉰 여덟에 한 많은 세상을 떴다. 「등고」의 시를 읊조린 것은 그의 나이 쉰 다섯 무렵인데도 구태여 ‘백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의 ‘백년’은 늙을 만큼, 나이들었다는 뜻이다. 나그네 길 만리를 헤매면서 고난과 신고로 삶을 겪어 가다보면 쉰 조금 넘은 나이인데도 백년인 듯이 아득히 길게 느껴진 것이다.



옛사람들은 천수(天壽), 곧 하늘이 내린 인간 수명은 백이라고 생각했다. ‘백수 백복’이란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두보 스스로 다른 시에서 ‘술집 외상은 늘어만 가는 중에도 인생 고래(古來) 칠십희(七十稀)’라고 노래한 만큼 인생 백년은 그의 꿈이었을 것이다.
술값 외상 갚기가 만만치 않았던 만큼, 인생 칠십 넘기기 역시 쉽지 않다고 그는 술잔 기울이면서 차탄(嗟歎)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수(百壽)의 꿈을 두보만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 생명공학이며 유전자 공학의 발달로 겨우 백수의 꿈이 저만큼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떠들어 대는 걸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기에 백은 ‘온 목숨’이다. 온전한, 옹근 인간의 목숨은 백이라고들 믿어 왔다. ‘온 달’이라면 보름달이고 만월이다. 온 달 같은 온 목숨 그게 곧 백이라고 옛사람들은 믿어왔다. 이제 당대 사람들은 그게 실현될 날이 그다지는 멀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한편 이에서 우리들은 갓난애기의 ‘백일’(백날)에 주목해야 한다. 유아 사망율이 높았던 과거에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는 ‘세 이레’를 거치고는 ‘백 날’을 탈없이 맞는 것은 여간 뜻깊은 일이 아니었다. 이제 바야흐로 인생의 최초 위기를 이기고 넘어서서는 ‘온 날’을 맞고 그래서 ‘온 목숨’을 비로소 누리게 될 계기를 포착한 날이 다름 아닌 백일이다. 젖먹이로서는 인생의 가장 큰 고비를 통과하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를 완료한 것이 된다. 백일은 젖먹이의 백수(百壽), 바로 그것이다. 그로써 젖먹이는 장차 백수를 누릴 기틀을 잡은 것이다.


‘온’은 옛 말로 백이다. ‘즈믄’은 천이다. 그 이상의 수량 단위는 순수한 국어에는 없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이를테면 ‘즈믄’은 크고 많은 수의 끝이다. 백은 그에 바로 버금한 큰 수고 많은 수다. 그러나 인생살이로는 즈믄은 당치도 않은 큰 수다. 사람 한 평생으로는 ‘백’이야말로 온전하고 온갖이고 온통이고 온골이고 또 온판이다. 백은 ‘온 수’다. 이 ‘온 목숨’의 꿈을 숫자 ‘온’이며 ‘백’은 담고 있다. 완전한 것, 충족한 것, 극을 다한 것, 전부이고 전체인 것 등등의 의미를 굳이 ‘온’과 그리고 ‘백’이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서도 으뜸 이유는 인간 목숨의 백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도 이 태백은 세월을 ‘백대(百代)의 과객’이라고 하고 김 삿갓은 자신을 ‘백대의 과객’이라고 슬퍼했다. 머물러 주지 않는 세월과 평생 떠돌이의 신세를 이 시인들은 노래한 것이다. 차고 넘쳐서 좋은 것이 있는 곁에는 바로 같은 이유로 흉한 것도 있는 법. 그게 세상이고 인생이다.



백결(百結) 선생의 교훈

그 러나 뭐니뭐니 해도 오늘 우리들이 옛날을 돌아보아 뜻이 가장 깊을 백은 바로 저 ‘백결(百結) 선생’의 백이다. 두보가 ‘처자(妻子) 의(衣) 백결, 통곡(慟哭) 송성회(松聲 )’라고 한 바로 그 ‘의백결’이 백결 선생의 백결이다. 누더기 옷을 걸친 처자식은 살아 돌아온 두보를 맞으면서 통곡했다. 울음소리는 솔바람을 더불어서 맴돌았다.백 조각, 백 가닥으로 기워 맞춘 옷이 백결이다. 한데 두보에겐 가난과 비통의 상징이었으나 우리 백결 선생에게는 음악과 짝지운 청빈의 미덕이었다. 그래서 그의 가락, 그의 선율은 더 한층 청아했던 것이다. 누구에겐 통곡의 짝이었으나 누구에겐 선악(仙樂)의 반려이던 백결이 있었다. 가난해서 오히려 돋보이는 예술성과 인간 정신이 있었다.